대지 (펄 벅 저 | 문예출판사)
땅의 내공
어린 시절, 깨알같은 글씨의 세로 쓰기로 된 "대지"를 읽은 기억이 있다. 그 땐 이보다 더 두꺼웠던 것 같은데, 기억이라는 걸 믿을 수가 없으니 유감스러울 뿐이다. 어쩌면 1부(대지) 외에 2부(아들들)와 3부(분열된 집안)까지 함께 제본된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직장에 다니면서 이 분량(450페이지 남짓)의 소설을 읽어내기가 쉽지 않은데, 추석 연휴 덕에 다시 읽을 수 있었다.
소설은 주인공 왕룽의 결혼으로 시작된다. 끓인 물에 찻잎을 넣을까 말까를 망설여야 하는 가난한 살림에 읍내의 부잣집 여종인 오란이 숟가락을 보태게 된 것이다. 어릴 적 부모가 세도가에 팔아 넘겨 고된 종노릇을 시작한 오란은 박색에 발까지 커다랗기 때문에(어른 여자의 발이 10cm 정도인 전족의 시대였다!) 인기가 없었지만, 가난한 농부인 왕룽으로서는 그마저도 감사한 일이었다. 어린 시절 읽을 때도 그랬고, 지금 읽어도 인상적인 건, 오란이 만삭의 몸으로 밭일을 하다가 진통을 느끼자 아이를 낳겠다고 혼자 방으로 들어가 아무렇지도 않게 출산을 하는 장면이다. 그녀는 둘째도 그렇게 낳았고, 기근이 들어 낳은 아이는 낳자마자 죽어버린다.
먹을 것이 아무것도 없어 며칠 씩이나 굶고, 그러다 죽을까봐 남쪽 땅으로 이동해 구걸까지 한 왕룽 일가가 첩실의 몸종까지 둘 정도로 흥하게 된 건 '땅' 덕이었다. 굶어 죽을지언정 땅을 팔지 않고, 돈만 생기면 우선 땅부터 사는 땅부자 왕룽 일가의 흥망성쇠는 '땅의 내공'을 보여준다. 마지막 장면에서 왕룽의 아들들이 땅을 팔 생각을 하는 것은 몰락의 징조가 되는것이다. 땅을 살 수 있었던 것은 물론 왕룽의 부지런함과 검소함, 땅에 대한 애착 때문이지만, 그것만으로 그가 그만큼의 부자가 된 건 아니었다. 그 계기는 오란에게 있었다. 알아야 면장을 한다는 말처럼, 부잣집에서 보고 들은 것이 있는 오란이 아니었다면 왕룽의 인생이 단숨에 바뀌지는 않았을 것이다. 시사하는 바가 크다.
여느 고전을 읽을 때처럼 책장 넘어가는 속도가 빠르다. 그 어떤 소설보다도 재미있고 흥미진진하며 '부'에 대한 교훈도 얻을 수 있어 젊은 사람들에게 일독을 권한다.
Posted by marian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