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 박정희
'영웅인가 기회주의자인가'
만화이긴 하지만, '민족문제연구소'라는 곳에서 기획을 했다니, 그 무게가 어떨지 짐작하기는 쉬운 책이다. "칼로 일어선 자 반드시 칼로 망한다"는 만고의 진리와 심판을 담아 '일제 식민 정권과 군부 독재 정권에 희생당한 모든 분들께' 바친다는 이 책은, 칼로 일어선 자 뿐 아니라 '그 칼에 봉사한 자'까지 역사의 칼에 베이게 될 것이라는 경고를 담았다. 책 머리에 있는, '왜곡된 역사나 날조된 신화보다 더 서글픈 것은 세뇌당한 영혼'이라는 말이 책을 읽는 내내 머릿속에 울리는데, 사실 이 책 역시 '세뇌'하기에 좋은 책이니 방심해서는 안 될 것이다.
청와대로 향하는 세종로에, 세종대왕 대신 볼품 없는 이순신 동상이 세워진 것에 대해 얘기한 건, "알몸 박정희"(최상천 저)라는 책을 읽은 장정일이었다. 이 책에서는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세 가지로 꼽았다. 첫째, '친일 황군'이라는 자신의 이미지를 지우기 위해 '왜놈들을 무찌른 이순신 장군'을 내세웠고, 둘째, 이순신 장군의 영웅적 인상을 통해 '군 출신'인 자신의 이미지를 제고하고, 셋째, 당시 조정의 간신 무리들을 박정희 시대의 야당 의원들에 빗대기 위해서였다. 사실 이제 와서 그런 이미지들은 모두 아무 상관이 없다. 그는 여전히 '다까기 마사오'나 '오카모토 미노루'로 알려져 있으며, 아무도 그를 '성웅 이순신'류(類)의 군인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결과적으로 그는 '경제 발전 신화'를 이룩한 대통령으로 기억 되고 있으며, 폭력 속에 자란 아이는 성인이 된 후에 그 폭력을 그리워하게 되는 것처럼, 비슷한 이유로 사람들의 그리움 속에 남아 있게 된다.
한 사람이나 한 시대를 바라보는 시각은 다양할 수 있다. 객관적인 시각으로 본다는 건 어쩌면 불가능한 일일 것이다. '한일 과거사 청산을 통해 굴절된 역사를 바로 세우기 위한 노력을 다각도로 진행'하고 있는 민족문제연구소와 신문 만평 작가들이 쓴 만화 박정희 역시 당연히 한 쪽으로 치우쳐 있다. 하지만 어느 정도의 치우침이 있더라도 읽기 쉽게 '만화'가 되어 나와준 것은 좋은 일이다. 적어도 '신화'가 되거나 '영웅'이 되게 내버려 두는 사회는 좀 그렇지 않나.
Posted by marian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