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래


고래 (천명관 ㅣ 문학동네)


책을 읽은 시간은 일주일정도이지만, 그동안 너무나 오랜 세월을 살아낸 기분이다. 마르께스의 "백년 동안의 고독"이나 펄 벅의 "대지"처럼 방대하기 짝이 없는 스케일의 소설이고, (신화적 상상력이라 해야할 지 마술적 리얼리즘이라 해야할 지 모르겠지만) 믿을 수 없는 사건을 실제 일어날 수도 있을거라 믿고 빠져들게 하는 소설이고, 한 번에 다 읽기 버거운 분량이라 밥을 먹거나, 누군가를 만나거나, 출근을 해야 하거나, 밤이 되어 잠을 자야 할 때 책을 놓아야하는 아쉬움이 큰, 그런 소설이다. 제10회 문학동네소설상 수상작(2004년)이며 이때의 심사위원인 소설가 은희경의 평처럼 "누구든 이 작가의 입심에 빨려들어가지 않을 수는 없을 것"이고, 문학평론가 신수정의 말처럼 "(이 소설이) 다루고 있는 그 유구하고 장려한 시간에 압도당"하게 된다.  
실제로 그렇게 파란만장한 삶이 있을까싶은 인생을 살다 간 금복, 평생 그 비린내가 가시지 않은 생선장수, 범상치 않은 기골의 걱정, 칼잡이, 文, '붉은 벽돌의 여왕' 춘희, 쌍둥이 자매, 국밥집을 하던 박색 노파, 벌치기 애꾸, 약장수, 뛰어난 미모의 수련, '어릴때 공장 마당에서 팔씨름을 벌였던 바로 그 소년' 트럭 운전사, 분노의 무당벌레... 이 소설에 나오는 주요 등장인물은 이외에도 계속 이어진다. 이들이 살아가면서 겪는 생존을 위한 노고와 죽음과 복수와 용서와 이해와 사람사이의 정情과 돈과 사랑 비슷한 감정과 수많은 법칙들로 이루어지는 이 소설은 정말이지 놀랍고 멋진 작품이다.

책 속 구절 :
어쨌거나 철도공사는 그렇게 시작되었고 외지에서 일거리를 찾아 뜨내기들이 하나둘, 평대로 모여들었다. 목도꾼을 위시한 철도 인부들과 현장소장을 위시한 건설회사 직원들이 먼저 들어오고 그들을 상대로 한 술집과 음식점이 들어서자 뒤따라 몸 파는 여자들이 들어오고, 또 그네들을 상대로 한 도붓장수와 등짐장수, 방물장수가 들어오고, 마침내 일 년 뒤 기차가 마을 앞을 지나다니게 되자 일을 하다 다친 인부들을 치료해줄 의원과 영혼을 치료해줄 목사와 전도사, 신부와 중이 기차를 타고 한꺼번에 들어오고, 예배당과 성당과 절이 한꺼번에 세워지고, 다시 예배당과 성당과 절을 지을 인부들이 한꺼번에 들어오고, 다시 그들을 상대로 몸을 팔 여자들이 한꺼번에 들어오고, 이런 식으로 일거리를 찾아, 볼거리를 찾아, 기회를 찾아, 건수를 찾아, 신도를 찾아, 짝을 찾아 먼 도시 또는 인근마을에서 사람들이 모여들었는데, 훗날 평대의 향토사학자들은 이때의 갑작스런 인구팽창을 가리켜 '평대의 일차 빅뱅'이라 일컬었다. (p.148)

잠시 후, 금복의 몸 구석구석을 찍은 엑스레이 사진이 나오자 그녀는 마치 진기한 보물지도를 들여다보듯 사진을 유심히 들여다보았다. 거기에 탐스러운 머리카락과 풍만한 엉덩이, 뜨거운 눈빛과 발그레한 뺨은 모두 사라지고 죽은 나무 삭정이 같은 앙상한 뼈만 하얗게 남아있었다. 금복은 사진을 집으로 가져와 전등불에 비춰보며 흘린 듯 며칠 동안 관찰하다, 마침내 큰 깨달음을 얻은 듯 고개를 끄덕이며 우울한 목소리로 말했다.
- 그러니까 다 껍데기뿐이란 말이군. 육신이란 게 결국은 이렇게 하얗게 뼈만 남는 거야.
그녀가 엑스레이 사진을 통해 발견한 것은 바로 죽음 뒤에 남게 될 자신이 모습이었다. 그날 이후, 그녀는 언제나 입버릇처럼 '죽어지면 썩어질 몸'이란 말을 자주 되뇌었다. 그리고 곧 내키는 대로 아무 사내하고나 살을 섞는 자유분방한 바람기가 시작되는데, 그것은 어쩌면 평생을 죽음과 벗하며 살아온 그녀가 곧 스러질 육신의 한계와 죽음의 공포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덧없는 몸부림이었는지도 모른다. (p.216)

文에게 소문을 전해준 사람은, 선대로부터 물려받은 전답 수백 마지기를 노름으로 몽땅 날리고 마누라까지 잡힌 끝에 결국 오갈 데 없는 뜨내기 신세가 된 한 나이든 인부였다. 그는 한껏 조심스럽고 완곡하게, 언제나 소문과 함께 장식처럼 따라다니는 변명들을 장황하게 섞어, 예컨대, 자신을 결코 입이 싼 사람이 아니며, 본시 떠도는 소문을 믿지도 않을뿐더러, 쓸데없이 이 말 저 말 옮기는 것을 세상에서 제일 싫어하며, 그런 짓은 앉아서 오줌누는 계집이라면 모를까 불알 달린 사내로서 차마 할 짓이 못 된다고 생각하지만, 과연 못 들은 걸로 하고 끝까지 입을 다물고 있는 게 당사자를 위하는 것이냐, 아니면 들은 대로 정직하게 알려주는 게 올바른 것이냐 하는 문제로 오랫동안 고민하다, 그래도 혹시 천에 하나 만에 하나 소문이 사실일까 염려되어, 만일 그렇다면 혼자만 모르고 있는 文이 사람들로부터 웃음거리나 되지 않을까 걱정되어, 다시금 얘기하지만 자신은 그저 오로지 文을 생각하는 마음에 털어놓기는 털어놓되, 소문이란 건 어디까지나 믿을 게 못되는데다 나중에 알고 보면 결국 뜬소문으로 그치는 경우가 많아, 그럴땐 그저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버리는 게 상책이니, 구태여 진실을 캐고자 하면 못 캘 것도 없지만, 꼭 그렇게 해서 사달을 일으켜야만 속이 풀리는 건 아니더라도, 이왕지사 말이 나온 김에 한번 확인을 하는게 어떨까 싶기도 한데, 한편 생각하면 그저 술 한잔 먹고 잊어버리는 게 현명한 처신이 아닐까 싶기도 한 게 아닌 게 아니냐며, 병을 주는 동시에 약을 주는 요사스런 화법으로 그 수상한 소문을 전했을 때, 文은 그 자리에서 소문을 전한 인부를 당장에 해고해버리고 말았다. 그는 말을 전한 인부 앞에서 욕을 하며 세 번 침을 뱉은 후 흐르는 계곡 물에 귀를 씻었다. (p.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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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3/07 22:19 2010/03/07 2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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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줄] 회계학 콘서트2

- 교수님..., 만약에 기본책임이 명확하지 않으면 어떤 문제가 일어날까요?
- 우선 모두 타성에 젖어 일을 하게 돼. 그리고 각 조직이 마비되지.
- 그럼 기본 책임을 잘못 설정하면요?
- 좋은 질문이야. 가령 영업사원의 기본책임을 '매출액을 늘리는 것'이라고 해보자고. 그러면 그들은 이익을 고려하지 않고 매출을 늘리는 것만 생각하게 돼. 믿을 수 없는 사람이든 아니든 신경 쓰지 않고, 가격을 대폭 내리거나 터무니없는 선물 등도 내걸지. 매출을 늘리기 위해서라면 뭐든지 하는 영업사원이 나오게 되는 거야.
- 교수님! 영업사원의 기본책임은 '공헌이익'이 아닐까요?
- 맞아! 공헌이익이야말로 영업사원이 회사에 공헌한 결과를 나타내고 있어! 그런데 매출 대금이 회수되지 않으면 아무 의미가 없어. 극단적인 얘기지만, 사기꾼에게 제품을 팔아도 이익은 나지만 들고 도망쳐버리면 대금은 회수할 수 없게 되지. 그래서 영업사원은 대금 회수까지 책임을 져야 하는 거야.
- 대금회수 책임도 기본 책임이군요!
- 제품의 판매 대금이 회수 되었을 때 비로소 비즈니스는 완결되는 거야. (p.318~320)

영업부의 기본책임
영업부의 기본책임은 공헌이익 책임, 회수 책임, 재고 책임이다. 기업예산을 달성하는 책임 단위는 부나 과가 아니라 한 사람 한 사람의 영업사원으로 하는 것이 가장 합리적이다. 공헌이익은 제품의 매출총이익에서 영업사원의 급여, 교통비, 판촉비, 출하운임, 광고비 등 판매에 직접 필요한 비용을 뺀 금액이다. 공헌이익이 적자인 영업사원은 회사의 수익 활동에 전혀 공헌하지 않는 셈이 된다. 그리고 회수 책임과 재고 책임은 회사에서 만든 제품을 모두 판매하고 대금은 판매한 본인이 전부 회수하는 것을 말한다.
(p.338)

만화로 보는 회계학콘서트 2 (하야시 아츠무 ㅣ 멘토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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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2/24 09:02 2010/02/24 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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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스타벅스에서 불온한 상상을 한다  
(강인규 지음 | 인물과사상사)


비슷한 시기에 읽은 "도시심리학"이 '서울'의 심리를 분석했다면, 이 책은 '뉴욕'에서 일어나는 특별한 현상과 그 이유를 분석한 것이다. 저자는 저널리스트이며 미디어학자이고, '오마이뉴스' 칼럼니스트이기도 한데, 제목에서 기대할 수 있는 것처럼 그렇게 '불온한' 내용은 아니라는 것을 미리 얘기해야겠다.
먼저 표제인 '스타벅스'에 대한 고찰 - 뉴욕의 '스타벅스'는 다른 나라에서와 마찬가지로 하나의 브랜드가 아닌 '문화현상'인데, 대한민국 스타벅스의 '밝고 활기찬' 분위기와는 달리 미국에서는 '무관심을 파는 커피숍'으로 성장했다. 어느 정도의 거리감과 안락함을 제공하는 것으로 충분한 것이다. 이어서, 미국에서는 '빨간색 스포츠카'를 몰고 다니는 운전자의 태반이 '머리가 하얗게 센 노인들'인데, 이는 "좌석이 두 개 달린 스포츠카를 사려면 우선 자식들이 독립해야 하고, 주택 융자금을 갚은 뒤에도 남는 돈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폭력'이 필수 요소인 미식축구가 인기이며, 패스트푸드 천국인 비만 제국, '이긴 자가 다 갖는 게임'인 선거 제도, 인종 차별은 있어도 '장애인 차별'은 용납할 수 없는 나라, 제약업체의 이기적 이윤 추구와 미국정부, 보험사의 책임 전가로 인해 생겨난 '의약 난민', 역시 민간 의료기관의 이윤 챙겨주기와 정부의 수수방관으로 '환자를 죽음으로 모는 의료체계', 연예인들의 적극적인 정치 참여... 이런 것들은 미국, 그 중에서도 뉴욕에 정착한 저자의 눈에 띈 문제점과 몇 가지의 '배워야 할 것들'인데, 어떤 현상들에 대해서는 대한민국, 그 중에서도 '서울'과 조목조목 비교하여 더 우울해지기만 한다. 저자가 '불온한 상상'을 한다는 그 스타벅스는 뉴욕의 어느 거리에 있는 게 아니라 명동이나 이대 앞 쯤일 것이다.

책 속 구절 :
애인을 데리고 와서 부모에게 소개시키고 함께 저녁을 먹는 것은 미국에서도 흔한 일이다. 그러나 이때 미국 부모가 할 수 있는 일은 조용히 음식을 씹어 (때로는 힘겹게) 목 뒤로 넘기는 것뿐이다. 한국인으로서는 부모의 간섭이 적은 것이 부러울 수도 있다. 그러나 이것은 대가를 지불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미국의
자식들은 한국에 비해 더 많은 자유를 누리는 대신 부모로부터 더 적은 혜택을 받는다.
인간은 영장류 가운데 부모로부터 가장 늦게 독립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 가운데 한국인의 독립은 평균적으로 미국인들보다 훨씬 늦다. 대학원 학비까지 대주고 서른이 넘은 자식을 결혼 전까지 부모가 데리고 사는 영장류는 오직 한반도에서만 찾아볼 수 있다. 한국의 부모들은 자식들을 오래 보호해주는 대가로 그들의 삶에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것이다. (p.28)

2008년 4월 초, 한국의 전국경제인연합회와 대한상공회의소 등 경제 5단체는 정부에 기이한 요청을 했다. "기업 활동에 방해가 된다"며 직장 내 성희롱 처벌과 장애인 채용 의무 완화 등을 요구한 것이다. 입만 열면 정부에 '미국식'을 요구하는 기업들이 이런 부분에서는 '주체적으로' 외길을 간다.
정상적인 사고체계를 지닌 정부라면 당연히 "부끄러운 줄 알라"고 꾸짖었어야 옳다. 하지만 한국 정부의 대답은 "검토하겠다"는 것이었다. 1990년에 미국의 장애인 법을 통과시킨 사람은 놀랍게도 공화당의 '아버지 부시'였다. 부시 대통령과 그가 속한 공화당은 '친 기업 정책'으로 잘 알려져 있다. 하지만 그는 이 법안에 서명하면서 이처럼 말했다.
"(기업들 가운데는) 장애인 보호법이 너무 모호하다거나 지나친 비용을 요구한다고 생각하는 경우도 있을 것입니다. 끝없는 소송을 낳게 될 것을 우려하는 이도 있을 겁니다. 그러나 자신 있게 말씀 드리건대 저와 의회는 아주 신중하게 이 법안을 작성 했습니다. ...... 우리 다 같이 수치스러웠던 차별의 법을 허물어 버립시다." (p.121~122)

"너의 재산을 팔아 가난한 사람에게 나누어 주라"거나 "원수를 사랑하라"는 성경 구절은 자신의 배를 먼저 채우고 이를 방해하는 자에게는 앙갚음하도록 프로그램 된 인간의 '이기적 합리성'과 정면으로 충돌한다. 남을 위해 헌신하라는 기독교의 가르침은 단순한 '정치적 올바름'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풍요로운 자산을 민주 사회에 제공할 수 있다. 그러나 안타갑게도 현재로서는 별로 그런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 일요일마다 교회 건물을 채우는 기독교인들이 베풂과 희생을 위해서가 아니라 축복과 명예를 위해 모여들고 있기 때문이다. 배우자의 승진이나 자식의 명문대 입학을 위해서 교회에 모여드는 사람들, 그들이 지나온 길에는 굶주린 노숙자들이 주목받지 못한 채 앉아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이보다 큰 문제는 교회가 자신을 향한 정당한 비판과 요구마저 '기독교 탄압'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사실이다. 자정능력을 잃고 외부로부터의 비판마저 불온시하는 교회로부터 희망을 찾기는 어렵다. (p.197)

Posted by marian

2010/02/21 13:29 2010/02/21 1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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